[투데이 窓] 스타트업 혹한기와 스톡데일 패러독스

얼어붙은 경기의 회복이 내년에도 어렵다는 예측이 많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벤처투자 시장에 혹한기가 닥치면서 올해 스타트업업계는 정말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연초만 해도 "그래도 연말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 섞인 예측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얼마 전 모 경제지에 나온 전문가들의 경기회복 예측시점은 대부분 내년 하반기였고 심지어 2025년은 돼야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반면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본 분은 한 명도 없었다. 최근 만나는 벤처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필자가 주변에서 체감하는 바도 그러하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다. 스타트업에도 벤처투자사에도. 이런 시기에는 소위 옥석 가리기가 된다고 하지만 이러다가 옥과 석 모두 고사할까 걱정이다. 주변에 직간접으로 아는 스타트업 중 현금이 이미 소진된 곳이 적지 않다. 그 회사들이 방만하게 경영했다면 모르겠으나 역량 있는 분들이 비용을 극도로 줄여 비상경영을 해온 곳 중에서도 이제는 상황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 있다. 예년 같으면 충분히 투자받을 수 있었던 곳들도 있다.

벤처투자사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투자하려면 펀드가 있어야 하는데 펀드를 만드는 게 너무도 힘들다. 최근에는 심지어 모태펀드의 출자확약을 받고도 나머지 금액을 채우지 못해 펀드결성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출자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 역시 이해가 된다.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굳이 높은 리스크를 무릅쓰고 벤처펀드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냥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가 이어진다. 스타트업업계 종사자들은 현재 상황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냉혹한 현실을 더 직시하며, 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앞서 대처하고,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구조조정을 포함한 어려운 결단을 내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그와 동시에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

요즘 들어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이는 경영학 명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소개된 개념이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때 포로로 잡혀 하노이의 수용소에서 석방일자도 정해지지 않은 채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8년을 견딘 미군 장군의 이름이다.

포로수용소에서 끝끝내 견뎌내 살아남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스톡데일 장군은 이렇게 답했다.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이러한 2가지는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막연한 낙관주의('크리스마스 때까지는 풀려날 거야')를 가진 사람은 낙담을 반복하다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고.

이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기업으로 끝끝내 발돋움한 기업들도 심각한 역경들을 마주했을 때 이러한 강력한 이중성, 즉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최종 승리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책의 저자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작금의 스타트업 혹한기를 거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아닌가 한다. 내년까지 경기는 좋아지기 어려울 것이고 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런 혹한기를 이겨내고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창업자에게 큰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