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투자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뭐라고 답할까. 생각할까? 대부분 입을 모아서 ‘창업자’라는 동일한 답을 할 것이다.
이는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매출이나 이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사업을 진행하면서 크고 작은 피봇팅을 하게 마련이다. 창업 당시의 사업 계획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업에 대한 가설과 시장의 반응에 따라 빠르게 사업 모델을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 스타트업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사업의 진화를 이끌어가는 창업가일 것이다.
결국 좋은 스타트업을 알아보고 투자한다는 것은 좋은 창업자를 알아보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한 선배 벤처투자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금융업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연구하는 인문학에 가까운 일’이라고. 필자도 이 분야에 대한 경험이 쌓여갈수록 더욱 그 말씀에 동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벤처투자가 그토록 어렵고도 흥미로운 업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파악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현재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도 너무도 어려운 일인데, 벤처투자라는 것은 미래에 이 사람이 훌륭한 기업가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그러한 경험이 쌓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나는 벤처투자자로 성장한다는 것이 일종의 나만의 딥러닝 모델을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창업자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여러 특징이 모델의 입력값이 되고, 그 창업자가 세월이 흘러서 결과적으로 어떠했는지가 출력값이 된다. 이런 입력값과 출력값으로 창업자를 판단하는 모델을 서서히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더 정교한 모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델은 명시적인 기준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는 ‘감’, ‘통찰력’ 정도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 같다. 모든 벤처투자자는 저마다의 이런 모델을 몇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필자도 몇 가지 명시적인, 혹은 감각적인 모델을 조금이나마 갖추게 된 것 같다.
필자는 샘 알트먼이 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최근에 읽었다. 오픈AI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이 되기 전에 그는 실리콘밸리의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 글에서 그는 창업자를 만날 때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했다. 바로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와 ‘이 사람이 산업을 장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였다. 이 질문을 읽고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많은 창업가를 만나고 경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델을 명문화해놓은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전자의 질문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하고 있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는 간단하지만 실은 꽤 심오한 질문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고를 때 우리는 단순히 그 사람의 사업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철학, 태도, 인성, 인간적인 매력 등 이성적, 감성적 측면을 무의식적으로 모두 고려하게 된다.
더 나아가, 추후 이 팀을 만난 인재들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는 좋은 인재들과 좋은 팀을 꾸릴 수 있다. 자기보다 더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끌어오는 것이 대표자의 역할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국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소위 ‘케미’가 넘치는 조직을 만드는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팀원을 뽑을 때 단순히 실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러한 창업가에게 투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