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좋은 의학 논문에 실린 인공지능 모델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만다. 대체 왜 그럴까? 최근 한 네이쳐 자매지에는 그 이유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현실적인 인사이트를 전하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 필자의 의견을 조금 더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이유는 학계에서의 성공과 사업적인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계에서의 성공은 논문, 학술 과제, 논문의 인용수 등으로 설정되지만, 사업적인 성공은 ‘얼마나 많은 병원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측정된다.
특히, 학계와 임상 현장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한 기준도 다르다. 학계에서는 개발한 인공지능이 논문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신규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논문으로 출판한 인공지능을 임상 현장에 적용하려면 추가적인 여러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차라리 그 시간 또 하나의 논문을 더 쓰는 편이 교수 승진에 더 도움이 된다.
두번째 이유는 일반적인 진료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환경과 일반 진료 환경에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는 너무도 다르다. 학계의 연구 환경에서는 갖가지 유형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더 정확한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겠지만, 일선 임상 현장에서는 이런 데이터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즉, 모델에 포함될 데이터를 잘못 선택하면, 이 모델을 제대로 개발하기도 전에 임상 현장에서의 활용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번째 교훈은 성공적인 인공지능은 결국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가’, ‘이 환자에게 무슨 약을 처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인공지능 모델이 직접적으로 답을 할 수 있어야만,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네번째 교훈은 그 인공지능을 대형 병원에서만 쓸 수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스탠퍼드 대학병원이나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면 사업적으로나 임상적으로 의미가 제한적이다. 큰 활용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더 넓은 범위의 임상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도 유용성을 느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학술적으로 성공한 인공지능이라도 임상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기란 너무도 어렵다. 병원은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으나, 또 한편으로 병원은 보수적이며, 엄격한 규제를 받고, 또한 진료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은 환자에게도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병원이 의료 인공지능을 도입함으로써 비용 대비 더 큰 효용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인공지능을 도입할지는 개별 의사가 아니라 병원 차원의 의사 결정이다. 그렇다면 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이 인공지능을 활용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인 유인이 발생해야 한다. 즉, 인공지능의 도입을 통해서 환자당 수익을 높이거나,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혹은 비용을 낮추는 효과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이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의 진료 효율을 높여서 단위 시간당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게 하거나, 환자당 MRI 촬영 시간을 단축해서 더 많은 환자의 MRI를 촬영할 수 있거나, 콜센터의 인력을 줄여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거나 등의 효과가 인공지능 도입 비용보다 유의미하게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이 결코 자선사업을 하는 조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에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 본인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여 창업하는 의사 및 교수들이 많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라도 사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창업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철저한 자기 반성과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