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디지털 치료제의 험난한 길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는 충격적이고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지털 치료제 분야의 선구자이자, 나스닥 상장 기업인 아킬리가 버츄얼 테라퓨틱스라는 업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회사에 매각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매각 금액이 단돈 3,4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일종으로, 주로 스마트폰 앱, 게임, VR 등의 형식으로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활용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은 개념이다. 아킬리는 이 디지털 치료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도 전인 2011년에 일찍이 창업하여, 이 분야 자체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징적인 회사다.

아킬리는 게임 기반의 아동 ADHD 환자들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치료용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인 엔데버Rx를 개발하여 2020년 FDA로부터 인허가를 받게 된다. 이는 세계 최초로 처방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치료용 게임이었다. 2022년에는 나스닥 시장에 상장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보험 적용 등 적절한 지불 주체를 찾지 못하면서 사업 성과는 계속 지지부진했다. 이후 소비자 직접 판매 모델로 사업 방향을 변경하면서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결국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헐값에 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뉴스를 보는 필자의 심정은 좀 복잡하다. 필자는 한국에 이 개념을 가장 처음 소개한 사람 중의 한 명이고, 이 개념이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분야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항상 경고해 왔다. 몇 년 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 개념이 국내에서 갑자기 주목받으며, 벤처 투자 시장에서 묻지마 투자가 일어날 때도 필자는 이 개념이 과대평가 되어 있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을 지금까지도 강조하고 있다.

아킬리의 실패는 디지털 치료제라는 분야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임상 검증, 인허가, 보험 적용, 의사 처방, 환자 사용으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에서, 인허가라는 관문을 통과했다고 할지라도, 이후의 보험 적용, 의사 처방 등의 단계를 해결이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킬리가 FDA 허가를 받고, 의사 처방을 받아서 환자에게 전달하는 모델을 고집하지 않고, 더 일찍 소비자 대상 직접 판매 모델로 변경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는 필자가 국내 디지털 치료제 회사들에 계속 권해왔던 전략이기도 하다.

이번 아킬리의 매각은 업계에는 또 다른 숙제를 던져줄 것이다. 이번 매각가는 한화 500억원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국내에서 웬만한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이를 상회한다. 특히, 한국에서 상장 심사를 할 때 해외 기업의 사례를 벤치마크로 삼게 되는데, 이런 마일스톤은 기업가치 산정이나 상장 심사에 두고두고 큰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실패 사례가 축적되면서, 국내외 후발주자들의 사업 전략도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잘 분석해서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된 전략 이외에, 어떤 사업 모델, 시장 진입 전략, 가치 제안을 해야 할지를 잘 고민해 보면 또 다른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치료제와 관련한 새로운 보험 급여 코드의 신설이 논의되기도 하는 등 외부 환경도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혁신가의 등에는 화살이 꽂혀 있다’는 말이 있다. 가장 앞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보면, 시행착오도 가장 먼저 겪기 마련이다. 아킬리는 그렇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장 앞장서서 개척하다가 결국 가장 먼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밑거름 삼아, 또 다른 디지털 치료제 기업들이 이 어려운 시장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